[제2기 공익기자단] 구조할 권리 = 인간답게 살 권리?
※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 DxE(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는 비영리 단체로서 동물해방공동체를 구축하고 방해시위, 공개구조 등의 맹렬히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종차별 사회에 균열을 내고 동물을 위한 혁명적인 정치·사회적 변화를 한 세대 안에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의 활동은 이러하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을 막아선다. '동물의 사체'를 판매하는 식당을 찾아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말한다. 또 동물을 구조할 권리를 합법화하고 공장식 축산의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 축산 현장에 침입해 ‘공개구조’를 실행한다.
2023년 7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군포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DxE의 “구조할 권리” 공개구조 세미나가 열렸다.
무섭고 긴 장마 가운데 예천 산사태, 오송 궁평 지하차도 침수, 해병대원의 사망, 교권은커녕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킬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젊은 선생님의 소식까지 끔찍하고 슬픈 소식들을 가슴에 담고 공익활동지원센터로 향했다.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렸던 궁평 지하차도 안에 있던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다가 침수된 지역의 축사에 있었을 동물들의 고통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내가 그 동물들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동물권을 존중하는 행위인가? 그렇게 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무방비 상태로 고통 속에 던져진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무력함일 뿐.
언제나처럼 공익활동지원센터 내부는 산뜻하고 잔잔하며 살짝 들뜬 분위기였다. 세미나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일찍 자리에 와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 많지 않은 참석자들이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발제자로 보이는 외국인이 서 있었는데 한국어 실력이 유창했다.
“군포시 길고양이 구조협회” 회원들이 자리 잡은 테이블에 끼어 앉아 친절하게 비건 빵을 권하시는 길고양이 협회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 4월 “새벽이 생추어리” 세미나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낯선 곳에 불시착한 이방인 같은 마음이 앞섰다.
세미나의 발제자는 미국인 제이크(Jake)라는 활동가였다. 유순하고 친절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고 한국에 거주한지 몇 년 되었는데 미국에 있을 땐 몰랐던 동물권에 관해 한국에 거주하면서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DxE: Direct Action Everywhere를 간략히 소개하는 문장 속에서 ‘어디에서나 직접행동’, ‘맹렬’, ‘비폭력’, ‘시민불복종의 힘을 활용해 사회변화를 일으킴’이 줄지어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오늘 초점을 두어 이야기할 부분은 “공개구조”인데
- 구조할 권리의 기본원리
- 공개구조의 필요성
- 2022~2023 미국에서의 획기적인 법적 승리
- 구조할 권리 성립까지의 멀지 않은 길
- 한국에서는? 의 순서로 진행할 것이라고 개괄하였다.
첫째, 구조할 권리의 기본원리 이야기의 시작으로 불볕더위에 자동차에 갇혀 있다가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구조된 강아지 Cotton의 영상을 보여준 후 형법 제21조, 제22조에 나란히 기재되어 있는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구조할 권리와 연결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설명을 듣는 동안 법조문 안에 있는 ‘타인’과 ‘법익’이라는 부분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공개구조의 원리로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비인간 동물도 ‘타인’의 범주에 넣어 인식한다는 말인가? 그들의 구조를 위해 다른 인간의 법익을 침해해도 정당하다고 본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과 함께 그들의 전제와 법 해석에 진심으로 동의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자각하였다.
둘째, 공개구조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에서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대기업의 생산구조와 비위생적이고 폭력적인 축산 환경을 폭로하고 동물의 상품화를 거부함으로써 공개구조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였다.
그 예로 유타 주 스미스필드(Smithfield)의 농장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릴리(Lily)와 리지(Lizzie)의 이야기와 캘리포니아 포스터 팜(Foster Farm)에서 공개 구조된 닭 에단(Ethan)과 잭스(Jax)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공개구조와 관련된 법적 공방에서 승소한 과정을 들려주었다. 두 대기업 산하 농장에서의 폭력적이고 비위생적인 사육 현실과 두 기업의 거짓말에 대한 폭로, 그리고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 – 절도할 의도가 없었음, 구조한 두 명(命)의 돼지와 두 명(命)의 닭이 각각 그 회사에 아무 가치가 없는 상태였음 - 가 배심원들에게서 만장일치로 절도죄에 대한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유로 이들에게는 이 두 건의 법적 승리가 구조할 권리의 합법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유의미한 성취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이들은 구조할 권리를 합법화하기 위한 모든 투쟁과정에서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뿐만 아니라 언론과 공동체를 동원하여 정경유착을 폭로하고 비건(Vegan)과 논비건(Non-Vegan)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대강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 보았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매우 선량한 사람들이다. 동물들이 폭압적인 상황에서 고통 받는 것을 차마 견디지 못하여 이러한 동물들의 상황을 모른 채 아무 불편함 없이 상품으로 그 동물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동물이 한 생명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생명권을 누리게 하고자 애쓰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방법이 매우 극단적이고 때로 심한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하기에 그들의 주장이 이슈가 될 수 있고 그 과정을 거쳐 이 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 사람, 소시민이어서인지 작금의 각자도생 대한민국에서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한 이들의 이러한 노력과 활동이 내 삶 속에 어떠한 실재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엄청난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는 이 시대 속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싸우며 내 식구들의 밥상을 책임져야 하는 주부로서 나는 동물권보다 우리 가족의 식생활권을 더 우선시하게 되는 솔직한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생존권을 최우선하게 될 때 사람은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동물권을 위해 직접 행동하고 구조할 권리를 합법화하기 위해 애쓰는 활동가들은 진보적이고 선한 사람들이기에 그들 앞에 나는 부끄러운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이런 불편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번 수해 때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를 어느 대기업의 하청 축산 농가를 생각해 보았다. 늘 부족한 자본에 쫓기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농장을 꾸려가야만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오늘도 죽기 살기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어떤 이들의 땀과 눈물을 떠올려 보았다.
DxE가 내는 작은 균열들이 그들의 생존권을 지켜줄 수 있을까? 자본가들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어 폭력적인 산업구조를 생명해방의 순환구조로 바꾸게 할 수 있을까? 우울하고 슬픈 뉴스들로만 채워졌던 장마 기간에 세미나에 참석해서일까? 긍정보다는 회의(懷疑)가 더 힘이 센 것 같았다.
발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제이크의 진지한 대답과 활동가들의 전망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일어섰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더욱?
고통 받고 있는 동물들과 함께 여전히 우리도 고통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