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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공익기자단] 늘푸른회 어르신 한글공부교실을 가다

공익활동 소식
작성자
군포시공익활동지원센터
작성일
2023-07-21 14:50
조회
212

 

아침 봄비가 조금 내리고 있다. 군포시 군포로 763-1. 산본1동 미래바이크 건물 2층에 늘푸른회장에서 자원봉사자(80세, 윤명자)가 교육을 하고 있다. 늘푸른회 어르신 공부교실은 한글을 전혀 모르시는 70~80세 어르신들을 위하여 늘푸른회의 회장이 직접 강의를 하고 있다. 42년간의 교직에서 몸담은 80세의 자원봉사자가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자 2층의 교실 23평을 무료로 제공하며 15년 간 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늘푸른회 회장이 어른신들의 공부교실에서 교육하고 있다

 

교실에 들어서자 칠판에 가득판서를 하여 놓고 한 문단씩 읽어 내려간다. 어려운 낱말은 별도로 골라 예시를 들려준다. 학생들 한분씩 일어나 판서된 내용을 읽어본다. 중간마다 문장에 공란을 만들어 선생님이 부르면 나와서 글자를 적는다.

 

어려운 낱말을 쉽게 풀이하는 것을 통해 그간 교직에서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나타남을 느낀다. 학습 분위기는 자연스럽고 질서가 있었다. 교재는 구연동화의 내용을 어르신들의 삶과 결부하여 자원봉사자가 재편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삶과 결부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들어온다고 한다.

 

수업분위기는 활기차다. 교사의 질문에 자신감 넘치게 답변을 한다. 옛날에는 아픈 환자도 많았으나 지금은 환자가 없다고 한다. 교육 전에 간단한 체조와 노래로 교육 분위기를 조성한다. 교육생은 코로나19 전에는 21명이였으나 지금 13명이다, 비오는 날인데도 1명의 결석자도 없다. 수업을 시작하는 8시 30분이면 수강생 모두가 교실에 다 들어온다고 한다. 수업종료는 11시 30분으로 평균 3시간 공부를 한다.

 

수업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하며 윤명자 자원봉사자가 화,수,목 삼일을 하고,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자원봉사자가 월,금 이틀 교육을 실시한다. 윤명자 자원봉사자는 천주교 신자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자원봉사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11시 30분경 아쉬움을 남기며 수업이 종료 되었다.

 

윤명자 자원봉사자는 42년 동안 초등교사로 근무하면서 어린이들의 인성교육과 환경교육, 봉사에 관심을 두고 교육했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을 해서인지 당시 가르쳤던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의 관계가 돈독해서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묻자 교사 시절 어린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양로원과 위문공연, 발달장애 시설 등의 방문을 하며 봉사활동을 했는데 어린이들과 함께 자원 봉사하는 시간들이 좋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생들이 나와서 선생님이 적어놓은 흑판글씨를 낭독하고 있다

 

한글 교육에 참여하는 분들이 배움에 있어 어려운 점으로는 교육생 대부분이 70~80대이기 때문에 기억력이 떨어져 금방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고,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가르치는 교사들도 힘들고 마음이 아픈 부분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한글 교육을 가르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교육생들이 글을 알아가며 길을 찾을 때도 표지판의 글을 읽으며 길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은행에 가서 돈도 찾을 수 있고, 편지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 삶의 의욕을 찾았다고 할 때 우리들의 봉사활동을 통해 참여자 분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원봉사 하는 분들한테도 문자로 손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그 때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앞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서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교육을 받는 사람도 좋겠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더욱 행복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윤명자 자원봉사자는 부친이 친필로 쓴 액자를 교실에 걸어 놓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위 액자는 자원봉사자 부친께서 친필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