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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공익기자단] 오늘은 모 시집장가 보내는 날

공익활동 소식
작성자
군포시공익활동지원센터
작성일
2023-07-21 15:17
조회
579

 

많은 이들이 설렘으로 맞이할 연휴의 첫날인 5월 27일 토요일. 초록의 싱그러움을 시샘하는 것인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 3일 연속으로 내린다는 비 예보는 야속하게도 딱 들어맞았고, 오전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시간이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궂은 날씨 속에서도 군포시 속달동에 위치한 한 논에서는 앳된 목소리이만, 제법 우렁차고 울림 있는 소리가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심어요!”

 

한번 들었을 때는 어떤 말인지 잘 몰랐으나, 두어 번 들으니 심으라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이윽고 “옮겨요!”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아이의 힘 있는 구령은, 후두둑 내리는 빗방울을 뚫고 하늘 높이 그리고 고즈넉한 속달동의 먼 곳까지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아이가 일렬로 허리를 숙이고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구령은 “밟아요!” 까지 총 세 가지였고, 아이의 구령에 맞춰 사람들은 구령에 맞는 동작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못줄에 맞춰서 모를 심는 참가자들

 

바로 이곳은 <모 시집장가 보내기>라는 이름으로 도시에서는 보기 드믄 모내기 행사를 진행하는 현장이었고, 쌀 한 톨의 소중함을 느껴보자 라는 취지의 행사를 주최하는 곳은 군포시 속달동에 위치한 ‘산울배움공동체’입니다.

 

‘산울배움공동체’는 2007년 첫걸음을 시작해서 15여년 간 군포시 수리산 자락 에서 초등대안 산울어린이학교를 해왔고, 군포시 속달동이라는 도시와 농촌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하고, 마을 속에서 한 사람의 조화로운 성장을 돕고, 더불어 생명평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구현해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을 도와가는 푸른빛중학교라는 중등과정도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바로 세상의 재단된 틀이 아닌 생명의 품 안에서 타고난 나다움을 찾아가고, 먹고 입고 살고 즐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살리는 삶, 즉 평화를 함께 일궈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에 교육철학을 담은 초중등 대안학교입니다.

 

모를 장난스레 머리에 얹고 즐거워하는 어린 1일 농부

 

‘산울배움공동체’에서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모 시집장가 보내기 행사를 해왔고, 이번으로 벌써 6번째를 맞이하는 뜻 깊은 행사입니다. 행사 참가비나 참가 자격에 제한이 없는 열린 행사이며, 직접 모판에서 모를 때어내서 논의 질펀한 진흙을 맨발로 밟으며 체험하는 자연 친화적, 환경 친화적 행사입니다. 금번 행사에는 초등학생 자녀와 부모님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이 유독 많이 보였고, 우비를 착용한 분들도 있었지만 내리는 비를 우비 없이 흠뻑 맞으며 모내기에 열중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진행하는 모내기를 생각하고 일상 복장을 하고 취재를 온 필자는 내리는 비가 야속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적어도 허리를 숙이고 모내기에 열중하고 있는 1일 농부들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들의 얼굴엔 큼지막한 함박웃음과 따뜻한 미소만이 가득했습니다. 내리는 비마저 그들은 모두 즐겁게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혼잣말로 궂은 날씨를 불평하고 투덜대던 필자를 제외하고는 단 한명의 입에서라도 그 어떤 불평, 불만의 소리도 없었습니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모내기와 내리는 비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비가 이들이 힘들게 심은 모를 풍요로운 가을까지 안내해서 소중한 알곡으로 당당하게 성장시켜 줄 것입니다.

 

이렇듯 논에서 직접 체험하는 본격적인 모내기에 앞서 먼저 약 30분 정도 간단한 교육을 실시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벼의 성장과정에 대한 기본 설명과 함께 모내기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 주의사항을 참가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난 후 모판에 촘촘하게 자라있는 어린모들을 서로서로 나눠들고 논두렁을 밟으며 논으로 향해 갑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초록색의 청개구리들이 이리저리 뛰며 길을 안내합니다. 그렇게 70~80m를 걸어서 모를 시집장가 보낼 결혼식장인 무논에 도착했고, 각자 신고 온 신발들은 가지런히 벗어서 논두렁에 놓아둡니다. 모판에서 모내기를 기다리는 싱그러운 연두색의 모들은 구입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작년에 진행한 모내기 행사에서 심은 모들이 자라서 노랗게 익은 고개 숙인 벼가 됐고, 그것들을 작년 가을에 수확해서 그 중 일부 볍씨들을 올해 모내기에 쓰려고 남겨두었습니다. 그 볍씨에 싹을 틔우게 하고 조금 자라게 한 후, 이렇게 모 시집장가 보내는 날의 예쁘고 멋진 신랑, 신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이 자연을 위해 그 생명의 끈을 해를 넘겨 이어주는 모습에, 벌써 가을의 풍년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저절로 넉넉해 졌습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날라온 모들

 

올해 모 시집장가 보내기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못줄을 잡는 줄잡이는 보통은 성인이 담당하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초등학교 학생이 맡았습니다. 제법 힘든 역할임을 한 번 더 강조하며 할 수 있겠냐며 의사를 재차 확인했지만, 당당하게 본인이 하겠노라며 줄잡이 역할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못줄이란 모내기를 할 때 모를 삐뚤빼뚤하지 않고 가지런히 심을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줄이며, 이 못줄에 맞춰 모를 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책을 수행하는 줄잡이는 못줄을 일정한 간격으로 옮겨주는 역할도 하지만, 기사의 서두에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해야 하는 행동을 구령으로 소리쳐 주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심어요”라는 줄잡이의 우렁찬 구령에 맞춰 각자의 손에 들고 있던 모를, 허리를 숙여 논의 질퍽한 진흙에 심게 됩니다. 이어지는 “밟아요”라는 구령에는 각자 서있던 자리의 바닥을 발로 밟으며 최대한 평평하게 다지게 됩니다. 이렇게 밟고 있던 자리를 다지는 이유는, 모를 심고난 후 다음 모를 심기위해 한걸음 물러서면, 방금 전까지 발을 디디고 있던 자리가 이제는 모를 심을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줄잡이의 “옮겨요”라는 구령에, 옮겨지는 못줄에 맞춰 사람들도 뒤로 한 걸음 정도 자리를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전문 농부 못지않은 초등학생 줄잡이의 우렁찬 구령은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을 이끌어냈고, 그리고 그들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인들 같은 흐트러짐 없는 모의 행렬을 만들어 냈습니다.

 

줄잡이 역할을 씩씩하게 수행한 어린이 참가자

 

‘산울배움공동체’ 중등부 담당 송승민 선생님과 우산을 나눠 쓰며 잠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필자는 먼저 교과서적인 질문인 모내기 행사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모내기 행사는 쌀 한 톨의 소중함을 깨닫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행사에요. 그리고 바쁜 현대인의 삶속에서 그 의미가 많이 사라진 기다림이라는 가치가 담겨 있죠. 내가 조급하고 서두른다고 볍씨가 금방 싹을 틔우고 벼가 돼서 쌀이라는 생산물이 나오지는 않잖아요? 싹틔운 볍씨가 모가 되기까지의 기다림이 담겨 있기에 서두르지 않는 여유를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기다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명이 시작되고 자라가는 것을 배우게 돼요.”

 

연이어 모내기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또 있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체험이 모내기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한 번씩 시간 되는 분들과 함께 벼와 함께 자라라는 잡초를 제거해주는 작업을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벼가 영양분을 먹고 잘 자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을이 돼서 수확의 시간이 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낫을 하나씩 손에 쥐고 직접 벼를 베는 작업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탈곡기로 벼를 터는 작업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벼의 껍질을 제거하는 도정의 과정까지 거치고 마무리 됩니다. 그렇게 도정까지 마친 쌀은 모두 나누어서 가지고 갑니다. 자신의 손으로 심고 가꿔서 이렇게 만들어진 소중한 쌀을 직접 먹어본다는 것은,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진 선물이니까요.”

 

산울배움공동체 중등부 담당 송승민 선생님

 

전문 농부가 아닌 어설프고 서투른 1일 농부일지 모르지만, 볍씨가 모가 되고 모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쌀이 되기까지의 소중한 과정을 도시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색적이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또 모내기 체험에 참가한 학생의 말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모내기 작업을 하던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려도 돼요?”

“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정진샘입니다.”

“오늘은 누구와 함께 체험 행사에 왔나요?”

“부모님과 형과 함께 왔어요.”

“체험을 해보니 어때요? 힘들진 않았어요?”

“비가 와서 조금 춥긴 했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체험을 해보고 어떤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었고 보람된 거 같아요.”

“어떤 게 보람됐다고 생각했어요?”

“어, 우리가 먹는 쌀을 이렇게 직접 심어본 것이 보람되고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심은 쌀을 직접 먹을 수 있다니 벌써 기대가 돼요.”

 

비록 옷은 비에 다 젖었지만 모내기 체험에 누구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한 정진샘 학생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넉넉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기름지고 맛있는 쌀이 만들어져서, 직접 키운 쌀로 지은 소중한 밥 한 숟가락위에 보람이라는 반찬이 더해지는 그날을 필자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모내기 행사에 참가한 정진샘 어린이

 

비록 짧은 하루 속에 몇 시간동안 진행된 체험 행사였지만 생명의 신비함을 충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쌀 한 톨의 소중함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사의 가치와 중요함을 뜻하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의미가 퇴색 된지 오래고, 이제는 식탁위에서 쌀보다는 밀가루나 육류 등 다른 먹거리들이 더 많이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또한 쌀의 소비량 감소와 더불어 농사의 중요성도 많이 잊혀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모 시집장가 보내기’ 행사는 이러한 시대에 농사의 소중함과 먹거리와 자연, 생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체험할 수 있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자연과 함께 상생하고,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갈 때 우리도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해 보이는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니까요. 비에 젖은 필자의 옷과, 논두렁의 흙으로 더러워진 신발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귀한 체험의 순간을 함께 했다는 증거인 거 같아, 정진샘 학생의 말처럼 보람된 시간이었다는 생각 속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가을 추수 때 후속 취재를 해야겠다는. 가을 추수 때는 여러분도 함께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줄잡이의 힘찬 구령에 맞춰 한모한모 심어진 가지런한 모들